가장 오래된 기억부터, 찬란히 스친 순간들까지.
나로서 살아온 진심의 기록
내 생애 첫 기억은,
할머니 등에 업혀 바라본 시골 풍경이다.
할머니는 6·25 전쟁 당시
황해도에서 남쪽으로 피난오셔서,
강원도의 작은 시골 마을에 정착하셨단다.
그로부터 스물다섯 해가 지나
내가 그 마을에서 태어났고,
할머니와 나의 인연도 시작되었다.
강원도 철원,
그곳은 내 생애 첫 기억이 각인된 곳이다.
숄의 성긴 틈새, 첫 기억의 창
저녁이면 할머니는 나를 포대기에 업고
손녀딸이 차가운 밤공기를 쐬지 못하게
머리끝까지 숄을 덮어씌우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는 사랑으로 감싸였다.
그 숄은 솜씨 좋은 이모의 뜨개 작품이었다.
이모는 나를 유난히 예뻐하셨고,
손뜨개로 정성껏 옷을 떠서 입히셨단다.
엄마는 그중 노란 원피스가 가장 예뻤다고 하셨다.
그 원피스는 얼핏 기억나지만,
할머니 등에 업혀 바라본
어스름한 시골 풍경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시골의 찬 밤공기로부터 나를 감싸주던,
이모의 손끝에서 태어난 숄은
굵고 성긴 실로 정성스레 뜬 것이었다.
그 씨실과 날실이 엮어낸 틈 사이로
나는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 고요한 풍경이 지금도 가끔 내 안을 스친다.
할머니 등에 업힌 나는
마치 파도 위를 두둥실 떠다니는 듯했다.
마침내 어느 집에 도착하면
할머니는 나를 내려놓으시고,
방 안 가득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셨다.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방 안의 따뜻한 공기,
웃음소리와 환한 표정들,
그리고 어린 내가 느낀 안도감은
지금도 내 안에 고요히 남아 있다.
이것이 바로, 내 생애 첫 기억이다.
가장 오래된 기억.
가장 따뜻한 기억.

아이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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