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먹고 싶어?”
해외에서 돌아온 지인에게 내가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다.
놀랍게도 열에 아홉은 “떡볶이!”라고 답한다.
출장, 유학, 이민, 여행…
낯선 땅으로 떠나는 이들은 짐을 챙기며
김치, 된장, 고추장, 쌈장, 장아찌까지 빠짐없이 가방에 넣는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실감한다.
발효 음식은, 우리가 그리워하는 집의 온기이자,
삶의 뿌리이고, 정체성의 맛이다.
그것이 없었다면 우리네 밥상이 얼마나 밋밋했을까.
그리움과 기다림, 그리고 자연의 조화가 담긴 ‘발효’는
오랜 세월 한국인의 식문화를 지탱해 온 정수다.
이제는 세계 셰프들도 주목하는 ‘기다림의 음식’,
발효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 본다.
_ I Story
발효, 자연이 만든 최고의 선물
발효는 박테리아, 효모, 곰팡이 같은 미생물이 유기 화합물을 분해해
알코올, 유기산, 이산화탄소 등을 생성하는 자연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독특한 맛과 향, 새로운 영양소가 탄생한다.
발효는 신비롭다.
영양소의 흡수를 돕고, 독성을 줄이며, 음식의 보존성을 높여준다.
시간이 선사하는 가장 건강한 조리 방식이다.
한국 발효 음식의 역사
고대부터 한국인은 발효를 통해 음식을 저장하고, 건강을 지켜왔다.
기원전 2세기, 중국의 유교 경전인 『주례』에 등장하는 간장 기록을 보면
삼국시대 이전부터 두장(된장+간장)을 섞어 쓰다가
이후 분리해 사용하는 문화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젓갈은 신석기 시대부터 기원한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사기』 신문왕 3년(683년)에는 왕후를 맞이하는 폐백 음식으로 등장한다.
삼국시대(기원전 1세기~기원후 7세기)에는
곡물과 채소를 발효시켜 저장하는 기술이 발전했고, 된장에 대한 기록도 남아 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고구려인들은 발효 식품을 잘 만든다(善藏釀)”는 표현이 등장해
고구려의 발효 기술이 번창했음을 보여준다.
고려시대(918~1392)는 발효 음식의 황금기라 할 만하다.
소금에 절인 채소, 젓갈, 장류가 지역별 특색을 띠며 다양하게 발전했고,
『해동역사』에는 “고려취(高麗臭)”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중국인들이 고려인의 된장 냄새를 ‘고려의 향’으로 기억할 만큼,
발효는 일상과 문화 그 자체였다.
조선시대(1392~1910)에는 발효 음식이 더 대중화되어
궁중뿐 아니라 민가에서도 김치, 장류, 젓갈, 술이 밥상의 중심이 되었다.
특히 고추장은 16세기 후반, 고추가 일본을 통해 전래된 이후 개발되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맛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한국인이 건강을 책임지는 대표 발효 음식
오랜 시간 자연 속에서 발효되어 깊은 맛과 영양을 더해온 한국의 대표 음식들.
김치, 된장, 고추장, 간장은 한국인의 건강을 지켜온 소중한 보물이다.
🥬 김치 - 시간이 빚은 깊은 맛
잘 익은 김치 한 조각에는 시간이 담겨 있다.
배추, 무,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 자연의 재료가 어우러져 발효되며
깊은 감칠맛과 아삭한 식감을 선사한다.
유산균이 풍부해 장 건강을 돕고, 항산화 성분은 면역력을 높여준다.
전통 장독대에서 숙성된 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맛과 영양이 깊어진다.
이제는 김치냉장고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 된장 - 자연이 만든 구수한 영양
콩을 발효시켜 만든 된장은 한국 식탁의 근본이다.
짭짤하고 구수한 맛 속에는 미생물과 시간이 빚은 영양이 가득하다.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해 면역력을 높이고 소화를 도우며,
깊은 감칠맛이 있어 국, 찌개, 나물 요리에 빠질 수 없는 재료다.
된장 한 숟갈에는 조상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장독대에서 세계로 퍼지는 한국의 발효 문화
발효는 고대부터 축적된 기다림과 지혜의 산물이다.
자연의 미생물이 음식에 천천히 스며들며
맛과 영양을 더 깊고 풍부하게 만들어낸다.
오늘날 김치는 세계가 인정하는 대표적인 발효 음식이 되었고,
된장과 간장 역시 다양한 요리에 활용되며
전통을 넘어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뉴욕, 파리, 도쿄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발효된 한식 소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요리들이 등장하고 있다.
한국의 발효 음식은 이제 세계 미식 문화의 새로운 영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장독대에 담긴 할머니의 지혜
“좋은 장만 있으면 조미료가 필요 없지.”
할머니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직접 장을 담그진 않지만,
냉장고 맨 윗칸엔 유기농 된장과 고추장이,
문짝엔 조선간장, 맛간장, 약초간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장독대 대신 냉장고를 내 방식대로 정돈해 두었다.
찬장 한쪽엔 소금도 종류별로 준비해두었다.
언제든 자연의 정수로 요리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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