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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troy talk talk/별빛 아카이브

(통영, 아빠의 바다) 김무근 작가님 인터뷰

by 별톡톡✨️ 2025. 3. 18.

통영, 아빠의 바다를 만나다

김무근 작가의 수채화를 처음 마주했을 때, 맑고 따뜻한 분위기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 따스한 그림 너머로 작가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지만, 그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대신, 그의 딸 김재은 님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재은 님은 아버지의 그림에 담긴 감정과 기억을 진솔하게 전해주었고, 우리는 함께 그림을 따라 작가의 세계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이 칼럼은 부모님의 품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예비 신혼부부들이 자신의 뿌리를 돌아보며 따뜻한 감동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한 것입니다. 
_ I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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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아빠의 바다

통영은 딸 김재은에게 ‘아빠의 바다’다. 통영으로 귀향한 아빠 김무근이 그린 말갛고 고운 빛깔의 수채화를 모아 펴낸 책 제목이기도 하다. 몇 해 전 딸은 ‘아빠의 바다’ 그림을 SNS에 한 달 동안 올리고 전화나 카톡으로 아빠와 나눈 이야기들도 함께 적었다. 영영 모를 뻔한 아빠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따뜻한 시선으로 고향, 통영을 그린 작가 김무근의 그림들. 그의 그림이 부모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맑은 창이면 좋겠다. 부모님은 우리의 근원, 영원한 고향이기에.

에디터 박미경(프리랜서)

미수동 연필 등대, 2020 ©2020 Kim Moogun, all rights reserved (그림 및 사진 제공: 플랜씨북스)

 

“오감이 자라고 녹아있는 곳이 고향 아닌가.
눈과 몸에 밴 산과 바다, 친구, 어릴 때 먹던 맛,
말투, 사투리 같은 것도 다 고향이다.
한마디로 나의 정체성이기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통영 사람임을 잊지 않았다.
그것은 나를 서정적인 사람으로,
관대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늘 독려했다.” _ (김무근)

 

“아빠는 살면서 고향 얘기를 많이 하지 않으셨어요.
마음속에만 담고 계셨죠.
귀향하셨을 때는 평생 간직했던 추억과
눈앞의 풍경이 겹쳐 보이셨던 것 같아요.
에메랄드빛 바다와 해안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작은 마을들을 보면 어머니 품에 안긴 듯 포근하다고 하셨어요.
아빠에게는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
조건 없이 받았던 사랑이 모두 고향이었던 거예요.
일평생 그 힘으로 따뜻함을 나눠주셨어요.” _(김재은)

 

다시 통영, 붓을 든 귀향

작가 김무근은 50년 만에 귀향하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고를 당해 누워 있을 때 한 친구가 화구를 쥐여준 게 계기였다.
통영은 옛 모습 그대로 그를 맞아주었다.
배들이 분주히 오가고, 갈매기가 날고, 인정도 따뜻했다.
작가는 등대가 보이는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아빠와 딸의 그림 대화

서울 사는 딸은 통영 사시는 부모님께 자주 연락드리지 못했다.
그러다 3년 전, 오랜만에 통영에 갔다가 아빠의 그림을 보았다.
혼자 보기 아까워 이를 SNS에 올렸고,
사람들이 그림 이야기를 궁금해해서
매일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고서 설명을 달았다.
사람들이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왔다.
덕분에 그해 여름에 통영 아빠 김무근이 그린 그림에
서울 딸 김재은이 이야기를 적은 그림에세이
《통영, 아빠의 바다》가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살면서 아빠의 마음을 알기는 쉽지 않잖아요.
그림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빠의 마음이 묻어 나왔어요.
퇴직 후 아빠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고향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시는지 알게 됐어요.”

 

아빠는 해저터널을 그리게 된 얘기도 들려줬다.
그가 어렸을 적 해저 터널은 신기한 장소였다.
바닷속 지하에 있으니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했으며,
소리가 동굴처럼 울리는 천연 노래방이었다.
아빠는 어린 손주들에게도 해저 터널을 보여주고 싶어서
통영에 왔을 때 제일 먼저 데려갔었다고 했다.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수록 잊고 있던 아빠와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어릴 적 거제도에서 살았어요.
집이랑 학교에서 아빠 직장이 있는 조선소가 보여서
아빠가 늘 가까이 계신 것처럼 느껴졌어요.”

 

딸은 어려서부터 아빠랑 얘기하는 걸 좋아했다.
신문을 보면서 교과서 밖 세상을 배우기 시작한 고등학생 때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빠한테 물어보면 이해가 갔다.
대학에 가니 사회는 또 다른 모습이었고,
그걸 두고 아빠랑 논쟁도 했다.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게 신문사에 입사했을 때
가장 기뻐한 사람은 아빠였다.
아빠는 딸이 결혼하기 전에나 후나
결혼생활을 어떻게 해야 한다든지 하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사는 모습으로 본보기를 보였다.
결혼을 앞두고 딸이 남편감을 소개했을 때 아빠는 첫눈에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러곤 통영에서는 딸이 결혼할 때 혼수로 한다며
전통 장인이 만든 나비장을 서울까지 올려 보냈다.
딸은 지금도 나비장을 소중히 사용하고 있다.
딸이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해삼 달인 물을 먹어야 건강하다며
양손에 해삼이 담긴 아이스박스를 들고 상경한 아빠였다.

 

그런 아빠에게 불의의 사고가 닥쳤고,
수술 후유증으로 하반신 마비가 찾아왔다.
딸이 병원에 갔을 때 엄마와 아빠는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희동이 인형을 병실에 두고 태어날 손주를 생각한다며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밝게 웃어주시는 부모님 덕분에 딸은 늘 행복했다.

 

봉평동 조개잡이 배, 2017. ©2020 Kim Moogun, all rights reserved (그림 및 사진 제공: 플랜씨북스)
통영운하 서쪽 하늘, 2021. ©2020 Kim Moogun, all rights reserved (그림 및 사진 제공: 플랜씨북스)

 

그리움을 그리다

“나와 같이 사라질 것들을 남겨 놓고 싶었다.” _ (김무근)



작가가 어릴 적 등굣길에 매일 보던 조개잡이 배는
몇 해 전 조업이 금지돼 더 이상 볼 수없었다.
하지만 봄철이면 아침 일찍 조개잡이 배들이
바다에 몇 척씩 나타나기도 했는데,
이를 본 작가는 반가워하며
사라져 가는 고향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다.

<통영운하 서쪽 하늘, 2021>은 휠체어를 타고 통영대교 아래에
직접 가서 난간 수를 세어가며 스케치하고,
겨우내 그린 끝에 책이 나온 이듬해 봄에 완성했다.
작가가 어린 시절에는 노을이 그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다.
그는 인생의 황혼에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본 노을을 남기고 싶어 했고,
그림으로 자신의 인생을 표현했다.

 

“통영에 왔는데도
여전히 ‘가고파’ 노래를 들으면
그리움에 가슴이 울렁거린다.
그 가고픈 고향 바다는 어디인가.
누구나 마음속에 본향(本鄕)이 있는 것이다.” _(김무근)

 

작가는 고향에 돌아왔음에도 아직 그리움이 남아있다고 고백했다.
작가가 궁극적으로 그리워한 대상은 태어난 곳이 어디든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있는 본성 또는 본향이었다.
그는 올해 1월 영면에 들었다.

“제일 애착이 가는 작품은 흔들 다리 위의 엉거주춤 마누라 그림.” _ (김무근)

 

그림이 남긴 아빠의 온기

 “아빠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목소리가 잘 안 나왔어요.
대신 손바닥에 ‘객지’라고 쓰셨죠.
서울이 고향인 엄마에겐 통영이 객지이니,
엄마가 원하는 좋은 곳에서 지내시게 하라는 뜻이었어요.”

이제 아빠는 통영에 안 계시지만,
딸은 터미널에 내리면 신기하게 마음이 편안하다.
통영이 자신을 따스하게 품어주는 기분이다.
무엇보다 집에 걸린 아빠의 그림들이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통영의 화가 김무근

작가 김무근의 그림과 책이
통영을 비롯한 각지에서 조금씩 더 알려지며 사랑받고 있다.
지난 4월 13~16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최된
<2023 내나라 여행박람회>에 참가한 통영시는
홍보관 벽면 전체를 그의 그림으로 꾸몄고,
책 《통영, 아빠의 바다》는 지난 1월에 2쇄가 품절됐다.
아빠와의 이별 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던 딸은
이제 힘을 내어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다.
초판 이후 작업한 작가의 유작들과 마지막까지 다정했던 부녀의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이제 황혼이 된 내가 돌아와
아쉬움에 애태우던 서쪽 하늘을 우러러보니 눈물이 어린다
노을이 참 곱구나
바다가 붉게 물들면
배는 서쪽으로 가는 꿈을 꾼다." _(김무근)

 

“태어난 순간부터 사랑했고, 영원히 사랑합니다.” _ (김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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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근 작가 프로필

1947년 경남 통영 출생.
통영 중·고 졸업 후 고려대학 진학으로 상경.
1977~2001년 대우그룹 근무. 2007년 수술 후유증으로 하지마비 장애 입음.
2016년 통영으로 귀향하여 고향 풍경을 그리기 시작.
2020년 딸과 함께 그림 에세이 《통영, 아빠의 바다》 출간.
2021년 1월 서울 하우스북스 미니갤러리 <통영, 아빠의 바다: 김무근 일러스트 원화 전시회>,
2022년 4월 경상남도교육청 통영도서관 갤러리 미피랑 <다시 꿈꿔 봄, 다시 그려 봄: 김무근 수채화 전시회>,
2022년 5월 통영시 꿈이랑 도서관 갤러리 <아빠의 바다, 통영의 맛: 김무근 아트 프린트 전시>,
2023년 1월 통영에서 영면. 2023년 4월 <2023 내나라 여행박람회> 통영시 홍보관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