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빨래 후기) 삶을 다려주는 위로의 무대 - “난 빨래를 하면서 오늘을 살아요”

문득, 마음속에 얼룩이 남아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괜찮았던 하루가 슬그머니 무너지는 날.
그럴 때는
빨래하듯 감정을 한 번 헹구고 싶어진다.

뮤지컬 〈빨래〉는
그런 날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공연이었다.

뮤지컬 빨래 무대 세트 클로즈업

요즘은 세탁에서 건조까지 버튼 하나면 끝난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다. 

그런 시대에,
뮤지컬 〈빨래〉는 굳이 손빨래해서 
햇빛과 바람에 말리는
오래된 세탁 방식을 꺼내놓는다.

그러곤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지우고 있나요?"

가운데 나영과 솔롱고를 중심으로 한 이웃들

서울살이 나영 이야기 그리고 이웃들

강원도에서 올라와
작은 서점에서 일하며
단칸방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나영.

그가 이사 온 동네에는
주인할매, 희정엄마, 몽골 청년 솔롱고가 산다.
서로 다른 삶을 살지만,
모두 하루를 잘 견디며 사는 사람들이다.

가운데 나영과 솔롱고를 중심으로 한 이웃들

나영이 울음을 삼키던 밤,
주인할매와 희정엄마는 조용히 말한다.
“슬플 땐 빨래를 해.”
그러면서 자기네 이야기를 들려준다. 

매일 남편과 딸의 기저귀를 빨아야만 하는
주인할매의 삶,
동대문에서 악착같이 살아낸 희정엄마의 하루.
그 빨래들엔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은 누군가를 안아줄 힘이 된다.

희정엄마.

맨 앞 왼쪽부터 주인할매, 나영, 희정엄마

무대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작은 공간 안에서
누군가는 울고, 웃고, 살아가고 있었다.
옥상에 널린 빨래들엔
삶의 흔적과 이야기가 묻어 있었다.

뮤지컬 빨래 커튼콜 배우들 단체 무대 인사

뮤지컬 빨래 커튼콜. 배우들 단체 무대 인사

뮤지컬 〈빨래〉는 2005년 초연 이후
20년 넘게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 사이 세탁 방식은 달라졌고,
삶의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 
하지만 ‘빨래’라는 은유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것은 마음에 묻은 얼룩을 깨끗이 헹구고,
묵묵히 삶을 견디는 방식을 상징한다. 

빨래는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함께 하면 덜 고되다.

그렇게 뮤지컬 〈빨래〉는
슬픔을 공유하고,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의
따뜻한 연대를 노래한다.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하는 힘에 대하여.

뮤지컬 빨래 커튼콜 장면

넘버 감상 노트

🎵 〈슬플 땐 빨래를 해〉
공연의 정서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곡.
말보다 더 깊은 위로가 되어준다. 

🎵 〈빨래〉
마지막을 장식하는 넘버이자, 가장 긴 여운을 남기는 곡.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오늘을 살아갈 힘을 건네준다.
(나의 최애곡!)

“난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 〈참 예뻐요〉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의 서툰 설렘.
솔롱고의 진심이 천천히 관객의 마음에 닿는다.

🎵 〈서울살이 몇 핸가요〉
서울살이를 해봤다면 누구나 공감할 오프닝넘버.
이 작품의 색깔을 보여주는 노래다.

 
공연을 보고 나서
오랜 친구와 함께 카페 트래블에 들렀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 앉아
공연 이야기, 20대 때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한꺼번에 꺼내놓았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며 서로를 다독이던 대학 시절, 
그때 나눈 막막함과 위로가 어느덧 시간이 흘러,
소중한 추억이 되어 돌아왔다. 

이제는 어느 회사의 임원이 된 그 친구가
두둑한 보너스로 초대해 준 이 공연은,
묵묵히 버텨낸 청춘을 떠올리게 했고
오랜 우정을 다시 꺼내보는 시간이 되었다. 

낙산공원 카페 트래블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엄마의 손빨래가 떠오른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떠오른 건 나영도, 주인할매도 아닌 엄마였다.
세탁기가 없던 시절, 
한겨울에도 시린 손을 불어가며
우리 삼 남매 빨래를 해주신 엄마.

손이 얼어 퉁퉁 부르트는 것도 모르고,
매일같이 우리를 단정하게 입혀주시던 손길.

나는 봄가을 찬물에 채소 한 번 씻는 것도 힘들어
온수로 바꿔 쓰는데, 
엄마는 어떻게 매일 그렇게 많은 빨래를 하셨을까.
이제 엄마 댁엔 세탁기와 건조기가 세트로 놓여 있다.
가끔 엄마가 말씀하신다. 
“참 좋은 세상이다!”

뮤지컬 〈빨래〉는
이 말을 무대 위에서 다시 꺼내 보여준 공연이었다.
빨래라는 행위를 통해 손빨래하던
젊은 시절의 엄마를 소환하고, 
서울 하늘 아래 묵묵히 살아가는
남녀노소의 하루를 빨래를 매개로 비춰준다.

이 공연이 20년 넘게 사랑받아온 이유도
그 빨래 하나하나에 담긴 사람들의 사연과 마음을
관객들이 자기 이야기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누군가의 손빨래가 지켜준 하루,
그 하루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가 되었음을
이 공연은 전하고 있다.

공연 정보
- 공연명: 뮤지컬 <빨래> 
- 기간: 2025.03.12 ~ 2025.09.21 (30차 프로덕션)
- 장소: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 예매처: 네이버 예약

네이버 예약 :: 뮤지컬 빨래 - 서울

이런 분께 추천해요 💬 

• 마음에 얼룩 하나쯤 남은 날, 조용히 감정을 헹구고 싶은 분
• 서울살이의 외로움, 겪고 있거나 겪어본 적 있는 분
• 엄마의 손빨래를 기억하는 세대, 혹은 그 손길을 상상해보고 싶은 분
• 청춘을 묵묵히 버텨낸 친구에게, 선물처럼 건네고 싶은 공연
• 작고 따뜻한 연대의 힘을 다시 믿고 싶은 누구든

출처: 인터파크

뮤지컬 용어, 알고 보면 더 재밌어요!

넘버 (Number)
등장인물이 감정을 담아 부르는 '한 곡'의 노래. 이야기를 밀고 나가기도 하고, 인물의 감정이나 상황을 노래로 표현한다. 이 작품의 대표 넘버가 뭘까? 생각하며 들으면 공연에 더 몰입할 수 있다. 

앙상블 (Ensemble)
주인공 외에 무대를 채워주는 배우들. 춤, 노래, 배경 인물 등 여러 역할을 맡으며 극의 완성도를 높인다.

커튼콜 (Curtain Call)
공연이 모두 끝난 후, 배우들이 무대에 나와 인사하는 시간. 기립 박수도 이때! 어떤 공연은 사진 촬영이 가능한 커튼콜을 별도로 운영하기도 하니, 공연장 안내를 잘 확인해보자.

오픈런 (Open Run)
종료일 없이 무기한 계속되는 공연. 관객의 반응과 티켓 판매 추이에 따라 공연이 이어지기도, 마무리되기도 한다. 일정이 유동적이니 예매 전 꼭 확인!

프리뷰 (Preview)
본격적인 개막 전, 관객 앞에서 시범적으로 선보이는 공연. 배우와 제작진 모두 긴장한 상태이지만, 그만큼 신선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무대다. 종종 티켓 가격도 조금 더 합리적이다.

본공연 (Main Performance)
프리뷰를 지나 정식으로 무대에 오르는 공연. 무대, 배우, 조명, 음향 등 모든 부분이 안정된 상태에서 만날 수 있다. 

런타임 (Runtime)
공연의 총 시간. 보통 90분에서 150분 사이, 인터미션(쉬는 시간)이 있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