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인터뷰) 21세기 풍속화를 그리다 - 한국화가 김현정
한국화가 김현정의 ‘내숭 시리즈’,
한 번쯤은 보셨을 텐데요.
고상한 한복을 입고 고상하지 않은 일상을
해학과 풍자로 풀어내는 그녀의 작품.
21세기를 살아가는 자유로운 여성의 모습,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발칙한 위트.
그 작품들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더욱 알고 싶어졌습니다.
특히, 결혼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다는 점에서
웨딩 독자들에게도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았죠.
그래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한국화의 경계를 확장하며,
시대상을 담아내는 한국화가 김현정을.
21세기 풍속화를 그리다
한국화가 김현정의 시선
한국화계의 젊은 신예라는 별명과 함께 한국화의 아이돌로 불리는 한국화가 김현정.
시선과 통념에 대한 고백적 자화상인 ‘내숭 시리즈’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를 관통하는 주제는 ‘시선’으로 작가는 스스로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 통념으로부터 자유를 지향한다.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세계로 초대한다.
에디터 박미경(프리랜서) 인물사진 김보하(더써드마인드) 헤어·메이크업 박수영, 전미영(라뷰티코아)
김현정 작가의 <내숭이야기>를 처음 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세련된 색감, 완숙한 필력, 직설적인 메시지, 동서양 기법이 한데 섞인 파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복을 입고 21세기를 사는 자유분방한 주인공인 내숭녀의 일상을 담은 섬세한 묘사에 갈수록 매료됐고, 고려시대 선묘불화(線描佛畵)가 연상되는 주인공 얼굴과 한복의 세밀한 필치에 감탄하며 한국화에 관심이 생기기도 했다. 작가는 작품속 또 다른 나에게 유머러스하게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 통념을 녹여내고, 사람들이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웃게 만들었다. 그 원형이 우리 조상인 풍속 화가들의 해학과 풍자가 아닐까 짐작한다.
작가의 고백적 자화상인 <내숭이야기>는 고상하고 비밀스러운 한복을 입고 생활하는 여인을 포착한다. 인물을 누드로 표현한 후 서양의 콜라주와 동양의 수묵담채 기법으로 독특한 대비를 줬다. 저고리는 직접 염색한 한지를 붙여 한복의 서걱거리는 질감을 살리고, 치마는 먹으로 반투명하게 그려 몸의 선을 비치게 드러내 ‘그 속 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라는 메시지를 담아낸다. 한복은 시선으로부터 작가를 보호하는 갑옷이기도 하다.
내숭에 빗대어 21세기 풍속화를 그리는 한국화가 김현정. 이제 작가의 오래된 화두인 ‘내숭’과 이를 망라하는 ‘시선’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영감을 주는 것, 결혼을 주제로한 작품들, 결혼관, 활동계획과 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다음은 작가와의 일문일답.
2023년, 한국화가 김현정의 자화상을 해시태그로 표현한다면 무엇일까요?
#일상 #시선 #통념 #나와너의이야기 #우리 #고백 #아이러니 #내숭
모두 ‘내숭 시리즈’와 긴밀히 연결된 태그인데요. 화가 김현정에게 ‘내숭’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로 인해 일상적인 생각과 행동을 자유롭게 결정하지 못하는, ‘시선’에 예민한 사람이었어요. 다른 ‘시선’ 만을 좇다 보니 희미해진 저의 자아를 찾기 위해, 흔들리지 않고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내 가 어떤 사람인가?’ 혹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자문하는 시간으로서 <내숭이야기>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 이후 시선과 통념의 문제를 고민하면서 저의 자화상인 ‘내숭’을 시리즈로 작업하고 있어요. 시선과 통념에서 일탈하는 자유를 지향하면서 저의 고백적 자화상과 같은 그림을 그린 것이 지금의 <내숭이야기>에요.
저는 내숭을 일종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속마음과는 다르게 하는 거짓말,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거나 남의 시선이 신경이 쓰여하는 거짓말이요. 헤겔은 인정받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을 ‘인정투쟁’이라고 표현했는데요. 저는 내숭이 인정투쟁의 목적으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사람의 본능적이고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숭이 꼭 밉지만은 않은 거짓말이라고 느껴져요.
사실 전체를 관철하는 단어는 ‘시선’이에요. ‘내숭’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건 작품을 보시고 피식 웃으시면 좋겠어서 였어요. 또한 내숭은 우리만의 감성이 아닐까 생각해요. 한국은 유교문화 기반이라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잖아요. 해외 전시를 하면서 내숭을 번역해야 했는데, 어느 나라에서도 완벽한 단어를 찾지 못했죠.
2013년 <내숭이야기> 첫 개인전 이후부터 지금까지 ‘내숭’이 화두인데요. 그동안 이 관점에 변화는 없었나요?
‘내숭’ 시리즈를 비롯해 저의 작품은 제 모습을 그린 것이에요. 고상한 한복을 입은 젊은 여성의 고상하지 않은 일상을 풍자와 해학을 담아 보여 드리며, ‘나도 이런데, 혹시 너도 그러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나아가 ‘이런 모습을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잖아’라는 공감의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유쾌하게 사회를 풀고 싶었고요.
이 각박한 삶 속에서 제 그림을 보실 때만큼은 “어휴! 웃겨, 발칙해”라고 해주시면 제게 더 행복한 일은 없겠죠. 이러한 내숭에 대한 저만의 가치관이자 관점은 이전처럼 변함이 없을 것 같아요. 대신 작품을 표현하는 부분에 다소 변화가 있어요.
작품을 표현하는 새로운 시도는 무엇인가요?
일반적으로 한국화 재료를 사용해 작업을 진행하지만, 유화나 3D프린팅, 페이퍼 커팅 아트, 아이패드 드로잉,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재료와 기법으로 작업을 시도하기도 해요. 더 나아가 언택트 시대에 맞추어 유튜브에 작품 제작과정을 올려요. 여러 활동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자신의 색깔로 다듬어낼 줄 아는 한국화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유명화가들은 한번 보면 각인되는 색채나 선의 특징을 가졌는데요. 고흐, 고갱, 피카소 등이 그렇고, 한국화가로는 김홍도, 신윤복을 비롯해 김기창, 박수근, 이중섭, 천경자 등이 그래요. 모두 자신만의 분명한 화풍을 가지고 작품세계를 펼쳐왔는데요. 저도 그런 화가가 되고 싶어요. 누가 봐도 “아, 김현정 화가 그림이네!”라는 말이 나온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쁘고 즐거울 거 같아요.
이미 김현정 작가만의 화풍이 있고, 수준 높은 표현력과 세밀한 미감에서 작가의 피·땀·눈물이 느껴져요.
작업량도 많은데 무수한 영감은 어디에서 오나요?
초기에 작업할 때는 아이디어가 샘솟았어요. 손의 속도가 아이디어를 못 따라가는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화판이 너무 커 보이고 막막해 보이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때부터 정말 노력했어요.책도 더 많이 읽고, 연구했죠. 지금은 뉴스도 많이 보고, 전시보다는 음악, 무용, 연극 등 다른 분야의 문화를 많이 접하고요. 최대한 많이 보고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 자연을 가까이하고, 명상과 반신욕을 할 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결과적으로 아이디어는 일상생활을 비틀어 보는 형태로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노력하고 공부하다 보니 일상의 순간순간에 영감을 얻어요. 예를 들어 <투혼>은 끼니를 거르며 작업하다가 쓰러지겠다 싶었던 순간에 전투적으로 햄버거를 먹었던 경험에서 소재를 얻었어요. 배가 고파도 그림을 그리던 중이었기 때문에 손에 기름을 묻히지 않으려고 빨대로 감자튀김을 집어 먹는 모습을 표현했는데요. 이렇듯 일상에서 영감을 얻고 작업을 진행해요. 일상의 모습을 표현하는 만큼 상황과 아이템은 굉장히 현대적이지만, 표현 기법과 재료는 전통을 고수해요. 동양화의 전통적 미의 요소를 살리면서도 동시대에서 편하게 향유되고 공감되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모든 작품을 소개하지 못해 아쉽지만, 결혼을 주제로 한 ‘계란 한 판 결혼할 나이’ 작업은 꼭 소개하고 싶어요.
‘계란 한 판 결혼할 나이’ 전시를 준비하고 계획하면서 ‘소셜 드로잉’으로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받았어요. ‘소셜 드로잉’이란 온라인 집단지성을 활용해 작품을 제작하는 방법으로 제가 새로 만든 단어예요. 사연을 받아 라디오를 진행하는 것처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연이나 아이디어를 듣고, 작품을 구상하는 거죠. 작품 진행 과정을 공유하며, 마무리하는 과정 그리고 해석까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반영하면서 작품을 완성해요.
그중 재미있는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할게요. △효자손이 필요 없다. △다른 사람들이 “결혼 언제 해?”라고 안 물어본다. 그런데 결혼하면 “아이 언제 낳아?”라고 물어본다. △집안일이 2배로 는다. △가족 통신 결합이 가능하다. 근데 통신 요금을 내가 내고, 내가 돈을 벌지만, 용돈을 받는다. △늘 가까이할 수 있고 평생 함께 할 친구가 생긴다. 그런데 때로는 늘 같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한 명의 친구만 만날 수 있다. △생활에 안정이 생긴다, 그런데 구속된다. △집에 가면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결혼하면 후회한다. 그렇지만 안 하면 더 후회한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결혼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해서 놀라웠어요. 장점이 곧 단점이 되는부분이 저의 작품과 대치되는 것이 흥미로웠고요.
‘계란 한 판 결혼할 나이’에 작가의 결혼관도 담겼을 텐데요. 결혼관이 궁금해요.
현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스트레스와 모습을 표현한 것이 ‘계란 한 판, 결혼할 나이’에요. 아무래도 여성은 결혼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나 여성성에 대해 다방면으로 고민이 많기에 이 모습을 작품으로 표현했어요. ‘나이가 찼으니 결혼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있고, 20대 후반부터 결혼할 ‘때’가 왔다고 하는 게 이상했거든요. 보통 직접 경험한 것만 작업했는데요, 아직 미혼이라서 결혼에 대해 그리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요즘은 결혼에 관심이 많아져서 고민하면서 작품을 구상 중이랍니다. 저는 결혼이 둘 만의 가정이 아닌 각각 다른 가족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결혼함으로써 여성에게 생기는 경력 단절이 고민이고 걱정되는 부분이에요. 또한 결혼은 안정감을 주면서도 자유가 없어지는 것, 그리고 사 랑하는 가족이 생기지만 내생활이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해요.
아트 페어에서 동양화 비중이 3퍼센트뿐이라고 했는데요. 결혼 문화도 마찬가지 같아요.
한국의 결혼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최근에 ‘명화 패러디’, ‘결혼’, ‘한복’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한국의 문화를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작품 중에 <결혼: 생각하는 예비 신부>는 <생각하는 사람_오귀스트 로댕>의 작품을 패러디했어요. 손에 들고 있는 종이는 사주단자인데요. 정혼한 뒤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신랑의 사주(四柱)인 생년·월· 일·시의 네 간지(干支)를 적어서 보내는 ‘간지(簡紙)’라고 해요. 연애 결혼하는 요즘과 달리 중매쟁이를 통해서 결혼했던 조선시대 때는 서로 사귀면서 성격을 파악하기 어려우니 남녀의 사주를 보고 궁합을 판 다했죠. 이처럼 시대에 따라서 결혼 문화는 변화하지요.
또 다른 작품은 <결혼:함들어오는날>이에요. 함을 메고 피리를 불고 있는 모습이에요. 혼례과정에서 신랑이 신부 집으로 혼서지와 예물을 넣어 보내는 상자를 ‘함’이라고 부르는데요. 결혼이 성사되어서 기쁘고 감사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옛날에는 하인이나 사람을 사서 보냈었다면 요즘은 신랑의 친구나 신랑과 가까운 친족이 직접 간다고 해요. 그마저 점점 사라져 간다고 해서 작업으로 꼭 남겨두고 싶었어요. 요즘은 주례없는 결혼식도 많이 하고, 틀에 박히지 않은 한국만의 개성을 찾아가는 시점인 것 같아요.
한국 전통문화가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예술가들이 이를 작업으로 남긴다면 그것이 후대에 온고지신의 대상이 될 테지요. 김현정작가가 한국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고 문턱을 낮춰준 것처럼요.
작업에 관한 저의 지향점을 말씀드리자면, 머리로 그리는 그림이 아닌, 가슴으로 그리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이는 솔직한 작업을 의미해요. 아주 오랫동안 작업을 이어 나가면서, 더 솔직하고 가슴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경지’에 오르는 것이 화가로서의 궁극적인 꿈이에요. 그리고 하나의 시대에서 살아 숨 쉬는 미술작업을 하고싶어요. 옛 그림을 볼 때 그 시대상을 파악한 후 그림을 읽어야 화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듯이 저는 시대상을 잘 반영하는, 그래서 동시대 사람들과 그림을 통해 많은 감정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작업 후, 관객과 소통할 때야말로 작업이 완성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2016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한국인 최연소 개인전을 여는 등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계획이나 꿈은 무엇인가요?
현대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리는 화가로서 한국화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대중앞에 널리 알리는 ‘문화전도사’가 되고 싶어요.
지난해 12월에 미국 워싱턴 D.C. 연방의회에서 초대전시회를 열었고, 이를 위해 한복 입고 김장하는 모습을 한국화로 표현했어요.
전시에 미국 연방의회 상하 원의원들이 참석했는데요, 그들과 제 작업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한국 문화를 알리는 강연을 구성하고 진행가능 여부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고,
이를 계기로 미국의 대학교에서 제 그림을 소개하고 한국문화에 대해 알리는 순회 특강을 할 예정이에요.
K-Art와 한국화를 세계적으로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작품에 매진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할 계획이에요.
더 나은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한국화가 김현정
profile
한국화가 김현정은 서울대 동양화과와 경영학과를 거쳐 동대 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3년 전시 〈내숭이야기〉는 출품작 13점이 이틀 만에 완판되어 화제를 모았고, 2016년 개인전 〈내숭놀이공원〉은 6만 7,402명이 관람하여 국내 최다 방문객을 기록했으며, 같은 해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한국인 최연소 개인전을 개최했다. 코카콜라, 우리카드, 현대자동차, 롯데, 신세계, 교보 등 기업과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다. 현재 서울시 홍보대사와 희망브리지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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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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